서 론:종교와 미술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깊은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수 십자가상이 없는 기독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만약 절에 불상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미술의 시각적 요소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귀천이나 지위 고하를 불구하고 사람들을 흡인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지는 즉자적이며 구체적이며 또한 환상적이다. 어려운 종교교리를 이해하기 쉽고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종교가 없는 미술 역시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서부유럽에서의 중세미술은 종교 그 자체를 대변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내용은 종교, 형식은 미술이 담당하였으며 마치 동전의 양면같은 관계였다. 언제나 인간의 간절한 신심은 그것을 구체적이고 손에 닿을 수 있는 시각적 형상화의 욕구로 이끌었던 것이다.
서기4세기에 불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갔을 때 조선반도에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은 정립하는 시기이었다. 7세기 중기에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하여 한국의 불교도 그때부터 중국의 전수와 계승을 끊기 시작하였다.
14세기 말기에 고려왕조는 신라왕조를 대치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신라 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나라의 후원을 받으면서 크게 성장한 승려들은 왕실의 고문 역할을 하였고, 대각국사 의천과 같아 왕자이면서 승려가 된 경우로 있었다. 이러한 불교는 고려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수많은 사찰을 건조하고 사찰벽화와 불교회화등 불교미술이 많이 나타났다.
고려사회는 무척 개방적인 사회였다. 그리하여 다양한 문화를 전개시켜 나갔다는 특징이 지적되어진다. 고려미술품에 있어 다양한 유형과 표현기법 등이 그를 잘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려사회는 강한 주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문화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융합의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고려불화에 있어 정토교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밀교적·선종적 문화양식을 융합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이 그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미술품의 표현기법에 대하여 고려의 귀족문화로 쉽게 규정짓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고려미술품은 불교문화로 성격지어야 타당하리라 본다. 왜냐하면 미술품은 불교적 요소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비록 귀족계층에 의하여 주도된 문화적 소산이라 할지라도 고려사회는 불교의 대중화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기에 비록 귀족층의 주도하에 제작된 미술품이라 할지라도 그 향유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고 믿기에 이들을 귀족문화라고만 강조하기에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하여 고려의 미술품은 불교문화라 규정하여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귀족문화라는 개념보다는 더욱 많은 역사적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게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